옥한흠 목사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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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사랑의 교회 안성수양관 언덕에 안치된 옥목사님의 묘소를 찾아서

 

안식년을 시작하는 주일 주보에 7년 전 내가 어떻게 우리 교회로 오게 되었는지를 소개하면서 옥한흠목사님과 김광일장로님 두 분을 언급했습니다. 김장로님이 서울에서 근무할 당시 사랑의 교회를 출석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고, 비슷한 연배였던 두 분은 서로를 훌륭한 목회자로, 믿음의 정치인으로 존경하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부산중앙교회에 대해서 일면지식도 없는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하는데 다리 역할을 하셨습니다. 옥목사님은 전화로 부산중앙교회를 적극적으로 천거하셨고, 얼마 후 김장로님이 교회 대표로 독일로 오셔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식년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김장로님이 먼저 주님을 부르심을 받더니 이제 안식년을 마치게 되는 시점에서 옥목사님이 그 뒤를 따라가셨습니다.

목사님의 소천하신 목요일 급히 서울로 올라가 장례예배를 드리면서 새삼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언제라도 찾아뵐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 속에서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방문을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안식년이 되어서도 우선 독일 다녀온 후 인사드려야지 하다가 그만 목사님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언젠가 설교를 준비하던 토요일 오전 갑자기 목사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최목사, 오늘 토요일이라 설교준비에 여념이 없지?” 하시길래 “아 부산에 오셨어요? 목사님, 필요하시면 제가 시간 내겠습니다.” 했더니 “아니야, 목사가 토요일에는 설교준비에 최우선을 둬야지”하시고 이런 저런 목회안부를 물으시고 끊으셨는데, 그것이 내가 들은 그분의 마지막 육성이었습니다. 만약 다른 목사님 같으면 “최목사 내가 여기 왔는데 한번 와보지” 하셨을 텐데 ..... 돌아보니 그 시간이 너무도 후회가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만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좋은 만남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고 바르게 믿고 섬길 수 있도록 잘 돕고 이끄는 사람과의 만남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나의 인생에서 옥목사님을 영적 멘토로 만난 것은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었습니다. 당시 사랑의 교회 청년부에 몸을 담고 있던 중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원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교회에서 유년부전도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옥목사님과 면접을 보는데 어찌나 차갑고 날카롭게 질문하시는지 나는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받아주셔서 당시 10여명 정도밖에 안 되는 교역자들 사이에 끼여 귀한 목회자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의 설교와 인품, 목회철학, 리더십 등등은 목회자로서의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뿐 아니라, 우리 동료목회자들 그리고 많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그는 선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분은 가셨지만, 한국교회에 여전히 좋은 멘토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분을 추모하는 많은 글들을 보면서 나 자신 그분의 삶과 신앙 그리고 헌신에는 한참 못 미치지 못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훼손치 않고 나 역시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