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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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매주 목요일 시사 QT를 담당하게 될 부산중앙교회의 최현범목사입니다. 시사 QT라는 말이 참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겠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인 시각에서 다루어 보려고 하는 시도라고 생각하면 아마 제일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첫 시간으로 왜 이런 것이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진공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직장, 교회, 국가, 다양한 인간관계, 정치, 경제, 문화 등으로 복잡하게 엮어진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그 삶의 자리를 이해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우선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지극히 부분적이고 또 많은 왜곡된 지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나아가 우리가 평생을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 부모 자녀간, 형제간에 그렇게 오래 몸을 섞고 살아도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겪는 갈등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를 보는 시각이 가족구성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국가, 세계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흐름과 문제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최근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티벳 사태가 일어나면서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화봉송과정에서 일어난 중국유학생들의 폭력사태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국 사람들과 중국 밖의 세계 사람들의 시각이 참 다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특별히 아직 통제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자기나라의 문제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중화사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애국이라는 명분하에 이성을 잃은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중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와 왜곡과 편견은 우리로 쉽게 특정한 이념이나 풍조에 휩쓸리고 이로 인하여 그릇된 행동과 건강하지 못한 삶을 지향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신앙인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눈이 보다 더 객관적이 되도록, 보다 더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순히 이 세상의 지식과 안목의 틀 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시고, 옳고 그름의 진정한 판단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눈을 성경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자칫 성경 속의 삶의 자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또한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성경의 원리를 강요하는 신정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또는 세상의 특정한 정치이념에 물든 뒤 그것을 신앙적으로 합법화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성경구절을 끌어들이는 식의 오류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들은 과거 기독교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저질러졌고, 또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심해야할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의 눈을 갖고 사회현실을 보려고 하는 시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사회를 가장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사회를 향해서 그의 실상과 문제를 지적하고 그 나아가야할 바를 바르게 진단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진정 세상을 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시대에 성도들에게 주신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선지자의 역할 - 이것은 이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사명입니다. 시사 QT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첫 시간으로 왜 이런 것이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진공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직장, 교회, 국가, 다양한 인간관계, 정치, 경제, 문화 등으로 복잡하게 엮어진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그 삶의 자리를 이해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우선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지극히 부분적이고 또 많은 왜곡된 지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나아가 우리가 평생을 몸담고 살아가는 가정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 부모 자녀간, 형제간에 그렇게 오래 몸을 섞고 살아도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겪는 갈등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를 보는 시각이 가족구성원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복잡하고 거대한 국가, 세계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흐름과 문제를 정확히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최근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티벳 사태가 일어나면서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화봉송과정에서 일어난 중국유학생들의 폭력사태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국 사람들과 중국 밖의 세계 사람들의 시각이 참 다르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특별히 아직 통제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자기나라의 문제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중화사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애국이라는 명분하에 이성을 잃은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중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회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와 왜곡과 편견은 우리로 쉽게 특정한 이념이나 풍조에 휩쓸리고 이로 인하여 그릇된 행동과 건강하지 못한 삶을 지향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신앙인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 외에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눈이 보다 더 객관적이 되도록, 보다 더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단순히 이 세상의 지식과 안목의 틀 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시고, 옳고 그름의 진정한 판단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눈을 성경을 통해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자칫 성경 속의 삶의 자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또한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채, 성경의 원리를 강요하는 신정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또는 세상의 특정한 정치이념에 물든 뒤 그것을 신앙적으로 합법화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성경구절을 끌어들이는 식의 오류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잘못들은 과거 기독교 역사에서 수없이 많이 저질러졌고, 또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심해야할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의 눈을 갖고 사회현실을 보려고 하는 시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사회를 가장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사회를 향해서 그의 실상과 문제를 지적하고 그 나아가야할 바를 바르게 진단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진정 세상을 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 시대에 성도들에게 주신 선지자의 역할입니다.
선지자의 역할 - 이것은 이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소중한 사명입니다. 시사 QT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이러한 노력을 기울여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