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권에 대한 우리의 양면성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권문제에 대한 우리의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한 깊은 반성의 물결이 일어나는 가운데 유엔은 인권위원회라는 기구를 설립하고 1948년 12월 10일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문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선언문은 모두 30개 조항을 통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 권리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선언문이 최초로 인권의 보편성을 확인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권이란 인간의 존엄성과 공의에 기초한 것이므로 지역적 전통이나 풍습, 여타의 가치들이나 이념, 심지어는 한 국가내의 법조차도 인권을 규정한 보편적인 원칙들에 선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상대화 될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성경은 인권선언문보다 훨씬 더 인간 존엄성의 근원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여타의 피조물과 달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종, 피부, 민족, 계급, 외모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인간을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은 곧 그의 형상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권리와 가치는 상대화 되어서도 안 되고 그 무엇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오늘날 인권을 감시하는 기구도 많고 인권을 위한 각국의 노력이 있지만, 종종 인권은 정치나 이념의 도구로 오용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인권을 앞세우지만, 그 내면에 인권보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이나 국가이익이 우선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UN의 인권선언정신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가령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최고의 보편적인 가치로 여긴다고 말하는 미국은 자신과 대립되는 나라에 대해서는 인권문제를 앞세우면서 비방과 압력을 가하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자신의 국가적인 이익과 부합되는 나라가 자행하는 인권유린은 관대하게 대해 줍니다. 이것은 공평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실 인권을 가장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단체들의 행보도 비슷합니다.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하고 아프가니스탄과 관타나모의 포로들에게 행한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만,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놀라울만큼 관대하고 침묵합니다. 그것이 북한을 자극하면서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인데 결국 정치적인 논리가 인권 그 자체를 우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스라엘의 팔레스틴에 대한 인권침해는 열을 올리며 비난하면서도 이슬람국가들이 샤리아법을 앞세우면서 자행하는 온갖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의 행위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합니다.

보수적인 시민단체나 보수적인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인권문제에 대해서 늘 침묵하면서 관심 없어 하던 사람들이 유독 북한의 인권문제를 앞세우며 비인간적인 북한 사회의 실태를 고발하기에 열을 올리지만, 과연 그것이 인권의 가치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정말 그러하다면 과거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반인권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아울러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와 같이 현재 세계 155개국에서 자행되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과 공정한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은 어떤 정치적인 목적보다 더 우선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정치성향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그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서 또한 참 형상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며 진정 세계의 인권신장을 위해서 노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