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안녕하세요. 오늘은 최근에 한 그리스도인 자매가 예멘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납치되어 살해당한 사건을 통해서 봉사활동과 선교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국제구호단체 월드와이드서비스에 속해서 예멘 북부 사다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엄영선자매는 실종된 지 사흘 만인 지난 15일 독일인 동료 2명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미 지난 3월 자폭테러로 한국인 여행객 4명이 숨진 이곳 예멘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미약하고 지방마다 다양한 정파들이 세력을 펼치고 있어 치안이 취약하고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가난하기에 의료혜택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곳에 가서 사랑의 봉사를 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신문에서 엄자매가 기독교 선교활동의 일종인 MK사역을 위해서 이곳에 갔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녀는 영국의 WEC에서 선교훈련을 받았고, 몸담고 있는 수원의 형제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WEC선교회에서는 임자매를 정식 파송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고 교회에서의 파송식 역시 의미부여할 수준이 아니라는 해명도 같이 실었습니다. 이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결국 기독교 선교활동하다가 변을 당한 것이 아니냐면서 교회와 기독교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샘물교회 아프카니스탄 단기선교팀의 피납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기독교인들의 해외활동에 대해서 심한 알레르기반응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순수한 봉사활동이라고 해도 그가 기독교인이면,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바라보면서 ‘남의 종교를 존중할 줄 모른다, 종교갈등을 야기한다’는 등의 비난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교계 일각에서도 이러한 비난에 동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위한 교회”의 틀을 벗지 못하는 한, 교회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비난을 틀렸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그 존재 자체가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며,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세상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자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선교의 외형적인 실적에 연연하는 등 “교회를 위한 교회”로 안주할 때에,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책망과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교회는 세상의 인정을 받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교회의 본질된 사명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임을, 그리고 그리스도인됨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느 나라에 가서 의료사역을 하건, 구제봉사를 하건 그곳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해주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세상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한다면 우리는 그런 비난은 감수해야 합니다.
1989년 마닐라 로잔대회에서 대두된 10/40창 지역은 미복음화된 세계 30억 인구의 97%가 살고 있고, 또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의료와 교육등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곳이 많아, 오늘날 대부분의 구호봉사단체들과 선교단체들의 역량이 여기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 이곳에서 많은 크리스챤 사역자들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이슬람과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로 기존 종교의 뿌리가 깊고, 타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며 정정이 불안정하여 사역의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시각에 편승하기 보다는 먼저 이곳에서의 사역과 사역자들에 대해서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품고 충분한 지지를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엄자매가 순수한 의료봉사를 했건, 선교사 자녀를 돌보는 사역을 했건, 선교사로 파송받았건, 받지 않았건 죽음에 이른 그녀의 봉사와 헌신을 주께서 기뻐하셨으며, 그녀는 우리 본받아야할 참으로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