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대법원의 첫 존엄사 판결을 놓고 생각해봅시다. 지난 5월 21일 대법원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인 환자 김모씨의 가족이 병원측을 상대로 제기한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과 같이 환자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하므로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판례를 만들었습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존엄사 허용조건으로 첫째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해야 하고 둘째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있어야 하며 셋째로는 사망단계 진입 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등 세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가족들은 6월 23일 오전에 어머니와 작별을 고하는 임종예배를 드렸고 병원측은 곧바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습니다. 그런데 호흡기제거 뒤 금방 숨을 거둘 것 같았던 김씨는 놀라웁게도 자발 호흡을 하고 있고 담당의사는 당분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나라 첫 번째 공식적인 존엄사는 뒤로 늦추어질 것 같습니다.

대법원의 판례는 주어졌지만, 아직 충분한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현실에서 지난 23일의 상황은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존엄사의 딜레마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선 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한 바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라고 할 때에 이러한 사망 단계를 누가 어떻게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겠는가가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번 대법관 중 일부는 해당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반대를 표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의사들에 의해서 의학적으로만 정의 될만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인간으로서 기능을 할 수 없고,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해서 법리적, 윤리적, 철학적 그리고 아울러 종교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러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지 못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례가 안게 될 큰 문제는 환자 본인의 “사전의료지시서”가 없는 가운데 존엄사를 허용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있어야 한다” 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이번의 경우 “환자의 평소 언행과 생활 태도, 인생관 및 종교관 등을 통해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반대한 대법관들은 “의식이 없는 환자 본인이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삶에 대한 강한 본능이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애착은 더욱 강렬하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과 남은 가족들 사이에는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상속이나 보험의 문제 나아가 치료비등 실제적인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환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사전의료지시서를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아가 사전의료지시서가 없이 의식불명환자가 되었을 경우 과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한 발언을 통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갈등의 여지를 담고 있습니까? 자칫 가족들이 필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조작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현대판 고려장이 우리 사회 속에서 재연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고, 주시는 것도 거두시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는 생명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제 의학발달의 결과로 나타난 소위 무의미한 생명 연장이 갖는 다양한 문제점을 인정하기에 존엄사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는 없지만, 사람의 생명을 그것을 주신 주님의 뜻대로 정의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과 제도적인 장치가 뒷받침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