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생명에의 외경을 부르짖은 슈바이처는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주어진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라는 말로 우리의 본능 속에 있는 생의 애착을 표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이 소중한 생명을 경시하는 또 다른 경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17세기 프랑스의 모랄리스트였던 라 브뤼예르는 “사람들이 자기 생명만큼 오래 보존하고 싶어하는 것도 없지만, 이것만큼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것도 없다.” 면서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이중성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치료하고 살리고 연장하기 위해서 수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과 남의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현상을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로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거두는 자살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자살률이 23.8명로 선진국 중에서는 가장 높다는 통계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자살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닉네임이 다시 한 번 국제사회에 각인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생명경시풍조는 세계 제 1위의 낙태 국가라는데 있습니다. 아직 엄마의 뱃속에 있다고 해도 이미 생명체를 갖춘 사람인데, 이를 고의로 죽이는 것은 살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작년 한 국회의원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네 명의 임신된 아이 중 한 명만이 태어나고 나머지 세 명은 낙태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낙태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의사들에 의해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고 이것이 병원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여겨지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명공학의 발전은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부시대통령이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금지시킴으로 소강상태에 있던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오바마대통령에 의해 지난 3월 9일 허용되었습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줄기세포연구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는 신호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4월 29일 한 병원의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연구계획을 승인하므로 이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난치병 치료와 장기공급이라는 선한 목표를 앞세우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생명이 무고하게 희생되어야 합니다.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려면 반드시 난자를 다량 채취하여야 하고 체세포 핵이식을 통하여 인간배아를 복제해야 하며 수많은 실험의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이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경시의 배후에는 언제나 철저한 경제논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일부언론은 줄기세포분야가 2015년께 40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면 이 연구에서 뒤지면 줄기세포 식민지가 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고, 대통령도 줄기세포분야를 고부가가치를 내는 첨단 과학기술로 국가경쟁력의 원천으로 삼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성장 동력, 거대한 이윤창출 등 경제논리 속에서 생명윤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혼란스러운 세대에 생명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하나님만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모든 육체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이 단순하지만, 가장 근본 되는 신앙고백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다시금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입에서 고백되어지고, 가슴에 담겨져야 하며, 세상에 선포되고 실천되어져야할 진리입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