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화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국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국회는 22일 오랫동안 끌어왔던 미디어법을 놓고 여야가 팽팽한 대결을 벌이다가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날치기에 의해서 이 법을 통과시키고 말았습니다.
미디어법 자체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이 상이하니까 이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법안통과를 위해서 무력에 의한 의장단상점거와 작전을 방불케 하는 국회의원들의 일사분란한 행동들, 고성과 몸싸움, 게다가 1차 투표에서 정족수에 미달하자 재투표를 실시해 법적무효시비에 휘말리는 어리숙함 등등이 한마디로 3류 정치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해 말 한미 FTA 비준안을 단독상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폭력국회에 이어서 우리 정치의 수준이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정치란 사회의 각처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다양한 대립이나 갈등을 조정 통제해서 질서를 잡아가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고, 대의민주주의에서는 국민들에 의해서 선출된 대의원들이 이런 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인들은 누구보다도 대립과 갈등을 극복할 대화의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대화와 타협이 없이 어떻게 서로 상이한 그룹을 대변하는 정당이나 국회의원들이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질서를 세워가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미디어법의 경우는 우리 정치의 주소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미 다양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가 이 법을 반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당에서 이 법안을 만든 이후 소위 조중동 세 신문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여론환기에 앞장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호전되지 않은 것은 국민이 진정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을 대변하도록 세움을 받은 국회는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구의 경우 여러 기관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여론조사에 정치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런 엄연한 민의를 무시하면서 숫적인 우세를 갖고 밀어 붙여 법안을 통과시킴으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이러한 날치기는 이제 우리의 정치에서 영원히 퇴출되어야 합니다.
야당인 민주당 역시 대화의 기술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보여주었습니다. 미디어법에 대한 갈등과 충돌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였고, 그러다가 여야가 이번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론만을 앞세우며 무조건 반대에 열을 올렸지, 자신들 나름대로의 좋은 안을 만들어서 상호 절충해보려고 하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여당과 현 정권을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에 기인합니다. 민주적인 선거절차에 의해서 세워진 현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고 정치판을 독재 대 반독재의 대결로 몰아가려고 하다보니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 의에 사로잡히면서 대화나 타협을 거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사고에서는 여당을 정당한 정치적인 파트너로 인정하지 못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건강한 대화의 기술이 발전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갈등이 있었던 로마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하는 비결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 같이 너희도 서로 받는데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모든 공동체가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귀를 기울여야할 근본 원리입니다.
이제 국민의 거울이 되는 정치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서로 물고 먹는 싸움을 그치고, 서로를 정치적인 파트너로 인정하고 받아서 서로 달랐던 뜻을 합하여 감으로 우리 국민들 속에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잘 정착시켜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