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빚을 두려워하는 삶

최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지칠 줄 모르던 소비가 크게 떨어지고 저축이 늘어난 것을 보고 “부채에 기반한 미국인들의 소비에 의존해온 세계경제의 불균형이 회복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을 내렸습니다. 사실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으로 수십년간 부채경제가 계속되었고, 국가 뿐 아니라, 국민들 역시 부채를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운데 거품경제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90년대초에 만난 한 미국이민자가 자신의 대여섯장의 신용카드가 꽂혀있는 지갑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미국의 실상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렇게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갖고 과도하게 소비하면서 카드빚을 지고 있고, 그러다 자칫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는 신용카드는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라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이러한 미국의 소비문화는 우리나라를 물들이고 말았습니다. 신용카드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신용카드를 여러 개 갖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으며, 카드빚도 늘면서 급기야는 2003년 신용카드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해 초까지 나는 독일에서 반대의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독일은 우리보다 경제규모도 큰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형마트나 상가에서도 직불카드만 쓸 수 있었고, 번듯한 직장이 있음에도 신용카드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불편한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빚을 내며 소비하는 것을 꺼려하는 풍토가 서민들 속에 뿌리내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번 세기적인 불경기의 와중에 수출에 많이 의존하는 독일 역시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서 독일이 경제위기에 유리하다고 보는 것은 모기지 연체비율과 가게부채가 별로 높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계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탄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신용카드대란 이후에도 소비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못해 매년 가계부채율이 10%이상 늘어나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면서 현재 가구당 4천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습니다. 이런 부실한 가계경제는 가정의 문제일뿐 아니라, 부실한 국가 경제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피차 사랑의 빚 외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빚지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이 하는 것을 다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분수 안에서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규모 있는 삶의 태도를 갖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아끼고 남겨서 이웃을 돕는 선한 사업에 부요한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이것이 또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