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지성인들이 2013년을 잘 표현한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를 선정했다. 이것을 선정한 이유는 새롭게 출발한 정권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 김선욱 교수(숭실대 철학과)"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부녀대통령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과거의 답답했던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에서 민주주의의 장점보다는 권위주의적 모습이 더 많이 보인 한 해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민의 소리가 공허하게 울리거나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소통부재의 정치였다는 말이다.

 

지난해 이런 불통정치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대하는 태도였다. 국민주권시대에 국민이 자신의 권력을 위탁할 권력자를 선출하는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말해주는 이 정치행위에 국가기관이 개입하여 불공정성을 야기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민주주의의 기초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대한 사안이 별것이 아닌 것처럼 치부되고 은폐되며 당사자들이 침묵하면서, 결국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이 국가뿐 아니라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가 불통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상식과 룰이 어떤 이유나 목적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무시될 때이다. 분명히 잘못되었지만, 그 안에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온갖 궤변과 편법으로 은폐하거나 호도한다.

그리고 순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억압한다. “의인이 득의하면 큰 영화가 있고 악인이 일어나면 사람이 숨느니라”(28:12)는 말씀처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럴 때 숨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소통되지 않음에 실망하고 지도자를 불신한다. 이것이 그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불통은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 학교, 직장 심지어 교회조차 소통의 부재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우리 교단이 겪은 문제의 핵심 역시, 대부분의 구성원들에게는 옳고 그름이 분명했지만, 그것이 온갖 것에 막혀서 통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 않았는가? 한국 사회에, ‘우리가 바로 개신교다라고 내세우는 장자교단으로서 우리교단은 이제 소통의 문제가 잘 치유되어 공법이 물처럼, 정의가 하수처럼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소통의 문제를 논할 때, 권력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속에 소통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것들이 많이 있다. 이념이나 지역 등 다양한 동기로 인해 서로 갈라진 진영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소위 진영논리란, 내가 속한 진영을 절대선으로 여겨 그 주장은 논리와 객관성을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상대진영은 절대악으로 여기면서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를 대화와 토론 그리고 타협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무찌르고 없애야 할 적으로 간주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사회의 소통은 어려워진다. 정치인들이 이러한 갈등을 풀어주는 역할을 간과하고, 진영들을 자신의 정치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면, 정말 불통인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막힌 사회의 소통을 위한 역할이다. 그리스도를 세상의 참된 왕으로 고백하고 하나님나라의 신앙을 가질 때에, 우리는 세상나라의 그 어떤 정치원리도 절대화하지 않는다. 세상의 이론이나 주장이 절대적인 진리일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진영논리에 사로잡힐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이론이나 정당 또는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 추종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조금 더 옳은 것과 조금 더 틀린 것, 좀 더 의로운 것과 조금 더 불의한 것을 잘 분별하고 그것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의로운 정치인을 선출하고, 좀 더 올바른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선택했다고 해도, 그 정권이 틀리게 하는 것은 틀렸다고 말하고 비판할 수 있는 양심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을 바르게 섬기는 예언자적인 태도이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태도를 견지할 때에, 양극화, 흑백논리, 이분법으로 불통이 된 우리 사회가 보다 소통되는 사회로 성장해 가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