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 13일만에 500만을 넘었고, 화려한 휴가는 20일만에 500만을 넘어섰습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소재로 하면서 형제간의 잔잔한 사랑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형은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면서 가방끈이 짧고 반면에 동생은 똑똑하고 공부 잘해서 미래가 촉망되는 학생입니다. 형은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동생이 잘 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거센 파도에 동생이 휘말려들자, 그 형은 거의 미친 사람이 되어 세상을 향해서 분노를 터뜨립니다. 동생은 형에게 있어서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동생을 향한 형의 사랑 앞에서 정치도, 이념도, 전쟁도, 민족도 다 상대화 되어 버리고 맙니다. 동생을 향한 형의 순수한 사랑입니다.
순수한 사랑 - 세상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많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그런데 사실 영화의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는 순수한 사랑이 흔하지 않습니다. 현실세계에서의 사랑은 대부분의 경우 이기적인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부부간에는 말할 나위도 없고, 부모 자식 간에도 계산하는 사랑이야기가 보편적입니다. 한마디로 “무엇 때문에” 또는 “만약 무엇이라면” 등의 수식어가 사랑의 전제조건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별 감동이 없습니다.
참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만일 거기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무엇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일 것입니다. 부족함에도, 미래가 없음에도, 못생겼음에도, 무능함에도,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주는 사랑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랑을 주는 이가 곁에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근간에 이런 사랑이야기를 지면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살고 있는 타이와 지젤 커플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올해 24세의 타이는 이라크에 파병되었다가 2004년 폭탄 테러 공격을 받고 50회 이상의 수술을 받으면서 한쪽 팔과 오른쪽 시력 등을 잃었고 얼굴 부위에는 큰 화상 자국이 남았습니다. 그의 연인이었던 21살의 지젤은 이전의 멋진 얼굴이 사라진 연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를 간호하면서 더욱 깊은 사랑을 느꼈고, 마침내 둘은 결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타이는 지젤의 변함없는 사랑에 힘입어 재활에 매진,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누구나 이런 사랑을 받아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사랑을 자신이 베푸는 것은 자신 없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런 사랑을 만나고 싶고 받아보고 싶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 그런 사랑의 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그는 흠이 없고 완벽한 분이셨습니다. 아주 고귀하고 높은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낮고 낮은 죄인들을 위해서 스스로 낮추셔서 그들 가운데 오셨습니다. 특별히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사셨습니다. 그들을 끌어안고 받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잘 것 없는 이들을 위해서 대신 죽음을 자취하셨고, 그의 죽음을 통해서 이 죄인들이 용서받고 영원히 축복을 입게 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의 사랑을 우리는 “불구하고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에는 어떤 조건과 이유가 없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받고 싶어 하는 참사랑이 오늘날도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십시오! 당신은 이 세상 누구에게서 느끼지 못한 평안과 쉼을 그 안에서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