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하면 우리 한국사람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것이 일본이다. 부산에서 배타면 불과 세 시간이면 가는 나라인데, 그렇게 멀게 느껴진다. 지난 1월말 우리교단의 변화와 갱신을 위해서 13년 전에 옥한흠 목사님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회갱신협의회의 임원수련회에 참석차 아내와 함께 이 여행길에 올랐다. 어느 외국을 나갈 때보다 묘한 흥분과 기대가 내 안에 있었다. 밤새 12시간을 머물렀던 배에서 내려 후쿠오카 항구에 첫발을 디디면서 50평생에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게 되었다.
왜 이렇게 오기 힘들었을까? “목회가 바빴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이나 연고 없이 외국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등등의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보다는 어려서부터 내 가슴에 심겨진 일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아직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말기 바로 이 큐우슈우섬 어딘가에 징용으로 끌려오셨다. 그리고 용케 도망쳐서 한동안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생활을 해야 했다. 해방이 되어 이제 좀 살게 되었다 싶었을 때에 이번에는 북한 공산당에게 쫓겨서 정든 교회와 집과 재산을 다 버리고 월남해야 했다. 일본과 북한 김일성 - 이들에 대한 미움은 아버지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산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제의 잔재로 일본말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내가 잘 모르고 일본말을 쓰면 아버지는 반드시 지적하시고 사용하지 못하게 금하셨다. 아마도 이런 아버지의 한의 일부가 내 감정 속에 유전되었을 것이다. 나 뿐이겠는가! 우리 민족 모두의 감정에 유전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평시에는 숨겨져 있다가도 뭔가 이슈가 나오면 이 어두운 감정은 괴물처럼 솟아올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 구별이 없다. 그러나 이 미움의 감정은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이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수해서는 안 되는 유산이다.
화해 - 오늘날 우리 사회에 화해보다 중요한 단어가 있을까! 작게는 가족 구성원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 속에 금이 가고 깨어지고 원수가 된 관계에 화해보다 필요하고 우선되어야 할 것이 있을까! 화해는 미움과 원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화해의 시작은 만남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만나야 한다. 일본 땅에 발을 딛고 돌아다니니 아름답고 좋다는 느낌이다. 일본사람들을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호텔에서 가게에서 늘상 만나니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하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다. 아마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해를 이루는 징표이다. 나와 너 사이의 막힌 모든 담을 허무는 능력이 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 위에 세워진 교회는 이 시대 화해의 사역자이다. 사람과 사람 속에, 민족과 민족 속에 깊이 박힌 미움과 원한을 치유하고 화해케 하는 일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 사랑하는 부산중앙교회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 성도들과 함께 일본여행을 갔으면 좋겠다. 일본을 이해하는 여행, 일본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