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계간지 <철학과 현실> 겨울호에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이런 주장을 했다: 2005년 인구조사에서 개신교 신자는 18.3%로 불교(22.8%)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개신교는 신앙심의 강도나 종교의례의 참여빈도에서 불교에 비해 훨씬 강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들도 수도권과 고학력 엘리트, 젊은 세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이렇게 형성된 개신교의 강한 영향력은 “개신교를 믿건 안 믿건 상관없이 개신교적 사고방식이 폭넓게 모든 한국인의 무의식 속으로 침투”해 가도록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게다가 한국의 모든 다른 종교들까지 개신교를 모방해 가는데, 이 ‘개신교 따라잡기’ 운동은 100여 년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개신교의 자기 성찰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 나 역시 공감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20년에 불과한 개신교가 지금껏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 또 지금도 미치고 있는 사회적인 영향은 대단하다. 지금까지의 10명의 대통령 중에 3명이 개신교 장로(이승만, 김영삼, 이명박)라고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수도권의 개신교신자 비율은 25%를 웃돌고 서울 강남은 50%가 넘는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서 많이 배우고, 잘사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기독교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는 이제 사회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하는 지도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러므로 거기에 걸 맞는 모습을 갖추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높은 사회층 인사의 도덕적인 의무를 의미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이제 우리 개신교교회가 음미해야할 중요한 단어이다. 그 사회에 지도적인 영향력을 갖는 그룹이 품위와 책임의식을 결여할 때에 그 사회는 병들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라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는 눈이 필요하다. 물론 영적인 기관으로서의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세상이 내뱉는 모든 말들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세상을 통해서 교회를 책망하셨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소리에서 우리의 숨겨진 허물을 찾아내고, 지금까지 당연시 해왔던 구조와 전통에 문제가 없었는가를 살펴보는 겸손한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요즘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교회사역자들의 세금에 관해서 목회자는 말할 나위도 없고 교인 모두가 전향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역자는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례비를 받는 것이다’라는 말로 비껴가는 시대는 더 이상 아니다. 누구나 수입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종교인의 세금에 관한 상세한 법적 규정이 없고, 세금이 4대 보험과 연관되어 교회가 더 많은 재정을 지출해야 할 뿐 아니라, 회계구조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쉽지 않은 걸림돌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단순히 세금을 내야한다 말아야한다 라는 막연한 공방에서 벗어나 어떻게 구체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교단의 교갱협(교회갱신협의회)을 비롯해서 각 교단의 의식 있는 단체들로 구성된 한목협(한국목회자협의회)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니 기대해본다.
우리 부산중앙교회는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하려고 하는 꿈을 가진 공동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세상보다 더 나은 윤리와 도덕적인 책임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교회의 목회자로 그렇게 되기를 위해서 노력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