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본격적인 국가정치는 노아홍수 이후 함의 후손인 니므롯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창10:10)에서 보듯이 그는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고, 이 강력한 리더십 아래서 국민들은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고, 여기서 언어와 민족이 나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도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서 야곱까지는 가족 내지 씨족공동체였지만, 400여년 뒤인 출애굽 당시에는 이미 인구 2백만이 넘는 국가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세 오경에는 제사와 개인적인 신앙의 율례뿐 아니라, 국가 속에서 어떻게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아야하는가에 대한 율례도 기록되어 있다. 이후 여호수아부터 시작되는 역사서들와 선지서들을 읽을 때에 정치라는 관점을 간과하면 안 될 정도로 정치는 구약성경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신약에서도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원리를 근거로, 바울은 국가권력 즉 공권력에 복종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윤리로 제시하고 있다.(롬 13장) 여기서 다스리는 자는 선을 포장하고 악을 형벌하도록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처럼 국가가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기관이요, 그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치를 세상일로 터부시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받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아울러 성경은 정치의 사악함과 왜곡됨에서 오는 역기능도 잘 가르치고 있다. 애굽의 권력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가두려고 했으며, 이스라엘의 불의한 권력자들은 백성들을 미혹하여 악에 빠지게 하고,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오랜 인류역사에서 그릇된 정치로 인하여 인간이 입은 피해는 이루 셀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역시 과거 그러한 아픈 역사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를 도외시해서도, 또 정치를 나이브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나는 적어도 교회의 목회자로서 교회와 정치관계에서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교회가 정치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인 교회를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 표에 있기에 나는 이들을 교회 앞에 소개하지 않는다. 아무리 현역 국회의원이나 기관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둘째로 교회가 어떤 특정 정당의 정치색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교인들 중에는 특정정당에 몸담은 정치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이 교회를 장사하는 시장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자신의 특정정당을 교인들에게 강요하거나 교인들을 정당에 끌어들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교인들은 다양한 정치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다.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다 있기 마련이다. 이런 다양성은 용납되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교인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는 특정정당에 관여하거나 강단에서 정당색이 선명한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교회를 정치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교인들로 복음 안에서 올바른 정치의식을 갖도록 돕고, 사회 속에서 정치적 책임을 잘 감당하는 사람으로 교육하고 양육해 나갈 것이다. 성경은 국가의 역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받는 자의 책임, 그리고 바른 정치의 길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바른 정치적 분별력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번 주 우리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를 한다. 정당의 정책과 인물 됨됨이를 꼼꼼히 살피고 앞으로 4년간 입법기관의 대표로서 지역사회와 중앙정치를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책임일 것이다. 그 책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잘 감당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