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16명은 처음으로 성지순례여행을 다녀왔다. 이집트와 이스라엘과 이태리 모두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공 속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갖고 있다. 그 삶의 자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을 바르게 알고 깨닫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열흘 동안 우리는 숙련된 가이드들의 안내를 받아가면서 많은 곳을 둘러보았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문화를 보면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또 왜 그렇게 쉽게 우상으로 돌아갔는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황량한 시나이 광야 길을 밟으면서 그들이 왜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새벽 두시에 일어나 모세가 십계명 두 돌판을 받았다고 하는 시내산정상(2285m)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린 뒤 바라본 해돋이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국경을 넘은 뒤 찾아간 이스라엘은 가는 동네마다 구석구석 신구약성경의 역사를 담고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짧은 순례일정은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애 그리고 죽음과 부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맞추어 질 수밖에 없었다. 먼저 우리는 북쪽으로 올라가 갈릴리호수에 배를 타고 예배를 드렸다.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에 당황하던 제자들의 모습, 그리고 파도를 향해서 꾸짖어 잠잠케 하신 후 너희 믿음이 어디있느냐 하면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실감있게 다가왔다. 갈릴리 주변의 가버나움, 나사렛, 디베랴, 가나 등을 둘러보면서, 그가 설교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베들레헴의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 감람산과 주께서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신 곳, 마지막 피땀으로 기도하신 겟세마네동산,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갔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 빌라도의 재판정에서 시작해서 비아돌로로사를 따라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 나를 위하여”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행진했다. 길가에 늘어선 수많은 상점들, 예수를 팔아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 상인들과 골고다 언덕을 뒤덮은 화려한 교회들은, 2천년전 예수를 죽이려고 했던 무지몽매한 민중과 종교지도자들을 연상하게 했다. 이 모든 왜곡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예수의 진실한 흔적을 찾고 그를 느끼고 싶어했다.
마지막 로마에서 휘황찬란한 고대 문명과 바티칸 교회의 웅장함을 보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곳이 있었다. 바울과 베드로가 말년에 갇혀있었다고 하는 좁고 어두운 감옥과, 핍박받던 시절 황제의 칼날을 피해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살다가 죽어 묻힌 지하 카타콤에서 우리는 사도들과 성도들의 고난을 기억했다.
그렇다! 우리의 신앙은 기억하는 신앙이다. 수천년전 일어난 출애굽을 기억하고, 예수님과 그의 십자가를 기억하고 성도들의 고난을 기억하는 데서 우리의 신앙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 살아계신 주님을 느끼게 하고, 내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성지순례는 바로 기억하게 하는 은혜로운 여행이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성도들이 한마음이 되어 더욱 즐겁고 좋은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