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1 운동 90주년을 맞이하여 

안녕하세요. 오늘은 얼마전 90주년을 맞이한 3.1운동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된 이후 10년간 일본은 우리민족을 우민화하고 일본에 동화시키기 위한 무단통치를 실시하였고 자연 이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은 누적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1919년 1월 일제의 독살에 의해서 고종황제가 붕어하셨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백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마침내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분출되었습니다. 이 독립선언문에는 당시 민족지도자 33인이 서명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종교인들로 개신교인이 16명,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이 2명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천도교의 교세가 기독교의 10배 이상이었음을 감안할 때에, 교회가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를 가늠하게 해줍니다.

실제로 3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3개월간 만세운동으로 인한 사망자수 7,509, 부상자수 15,961 체포된 자 46,948명이었는데 이중 개신교인이 17,6% 로 무종교인 다음으로 가장 많았으며, 교회 파손만해도 47개소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개신교인이 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교회들이 운동의 거점이 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온 결과였습니다. 개신교선교사가 들어온 지 겨우 40여년밖에 되지 않았고, 신자가 전국민의 1%미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영향력을 대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3.1운동의 실패로 교회는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하면서 사회로부터 급속도로 격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이 운동으로 의식이 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구속되거나 해외로 망명하면서 교회 리더십이 현저히 약화된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교회는 외적으로는 일제가 우리민족을 회유하면서 전개했던 일종의 문화정치에 타협 내지는 안주하였고, 내적으로는 개인화, 내면화, 내세화의 경향으로 흘러가면서 사회현실에는 무관심한 이원론적인 신앙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에 이미 가르쳐지고 심겨졌던 정교분리에 있습니다.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가르쳐진 이 정교분리는 처음 미국에서 시작된 의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전달되었다. 독립하기 이전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그러므로 영국성공회가 국교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온 다양한 개신교인들은 이곳에서 성공회로 인한 핍박과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독립에 성공한 후 미국은 국교제도를 없애면서 중세이후 서양에서 최초로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는 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사실 정교분리는 교회가 국가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도보다는 도리어 교회가 국가에 종교적인 중립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데서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의 의도와 달리 미국에서도 정교분리는 다양한 현상으로 발전해갔습니다. 어떤 교파가 미국 사회에 소수일 때, 이러한 정교분리는 종교 자유를 의미했으나 그 교파가 점차로 장로교나 침례교와 같이 다수파가 될 때 정교분리는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무관심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영역에서 보수적인 경향을 강화시켰습니다.

우리나라의 선교초기 정교분리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유교사상이 몸에 깊이 배었던 교인들은 왕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했고,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문제에 무관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3.1운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참담한 실패로 정교분리는 다시 힘을 얻게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강한 이원론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계속 이어져 해방이후 다양한 정치변화 특별히 독재체제하에서 한국교회는 대체로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매년 3.1절만 되면 이 독립운동에 우리 개신교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모순을 범해왔습니다.

이제 3.1운동 9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개신교는 이 운동에 담긴 선조들의 아름다운 전통을 보다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것을 잘 이어가야 합니다. 이원론적인 태도를 버리고 사회현실의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을 신앙 속에 담고 함께 풀어나가면서 보다 공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