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성도님들께,

주님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벌써 그곳을 떠나온 지도 두 주일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제가 오고 나서 몇 일은 비가 오더니 지난 주일부터는 아주 화창하고 더운 여름날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독일에 오래 살면서 아주 소박하고 작은 바램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락방에서 자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독일 집은 대부분이 꼭대기에 다락방을 갖고 있는데, 지붕이 경사져서 창문이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나 있고 방 안 전체가 세모꼴로 되어 있어 좀 불편하기도 하지만, 낭만적인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이 방은 아이들이나 젊은 식구들의 차지가 됩니다. 지금 저는 다락방에서 창문 밖의 파란 하늘과 거기에 떠다니는 뭉게구름들을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바랬던 다른 하나는 독일 가정에서 몇 일이라도 지내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잠깐의 방문이나 혹은 세 들어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 식구가 되어서 먹고 자고 같이 사는 기회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경험입니다. 아마도 독일가족들과 몸을 같이 뒹굴면서 살아보는 것 이상으로 독일적인 것을 잘 느끼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이번 독일 방문에서 이 두 가지의 소박한 소원을 다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저의 지도교수(크리스티안 링크)의 집입니다.  두 부부 모두가 깔끔한 독일 사람답지 않게 소탈해서 거의 불편을 모를 지경입니다. 깔끔한 사람들 - 아주 고지식한 독일인 - 같으면 다른 식구를 불러들이지 않겠지요. 독일 사람들 중에는 집안에 먼지나 거미줄 하나 없이 매일 청소하고, 유리창도 일주일에 한번씩 번쩍 번쩍 닦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부엌 싱크대 위에 종종 지난 저녁에 먹은 그릇들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뒹굴고 있고, 집 구석 구석에 간혹 거미줄도 눈에 띄어서 정말로 마음이 편한 곳입니다.

두 부부는 인간미가 가득해서 외국인을 좋아하고, 특별히 독일로 망명하였지만 독일정부에서 아직 망명허락을 받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 제 3세계의 외국인들을 뒷바라지하는 일을 열심히 하시는 그야말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의 검소하고 소박하면서도 인정이 넘치는 삶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인도하신 주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처음 얼마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좀 힘이 들었습니다. 시차적응도 그랬고, 안 읽던 독일 책들을 다시 보느라 끙끙대면서 책상머리에 앉아서 한숨을 푹푹 쉬곤 했습니다. 예전에 독일에 있을 때 어깨근육이 뭉치는 현상이 다시 재발되면서 몇 일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일 전부터 컨디션이 잘 회복되어 이 마지막 싸움을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 지난 토요일 제가 애지중지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켤 때마다 화면이 흐려지면서 이상한 색깔이 나오고 한참 뒤에는 아예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지난밤까지 작업한 것은 다행히도 다른 디스크에 저장해 두었지만, 토요일 오전에 작업한 중요한 파일 한 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급하게 컴퓨터 회사에 가져갔더니 하는 말이 노트북은 액정화면이 고장나면 고치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걸리니 차라리 새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한 시가 급한데, 고치고 사고, 다시 프로그램을 깔고 하는 모든 것이 쉽지 않은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파일로 인해서 속이 상했습니다. 꼭 한번이라도 정상적으로 켜져서 이 파일만이라도 건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지금까지 논문을 쓰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트북이고 정말 아직 쓸만한 것인데, 이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나를 배신을 하다니...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집에 다시 돌아와 수없이 기도하면서 반복해서 켜보았지만, 반복해서 재기 불능임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주일 아침 다시 간절히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켰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노트북을 뜯어보고 싶었지만, 고칠 능력도 없는 주제에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아 그만 두었고, 답답한 마음에 그저 이리 저리 만지다가 뒤에 붙은 배터리를 떼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다시 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노트북 화면에 글씨가 또렷이 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놀라서 모두가 늦잠 자는 이 이른 아침에 큰소리를 뻔했습니다. 배터리를 다시 끼우고 켰는데도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보아 그것도 고장의 원인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파일도 건지고, 건강한 노트북을 다시 되찾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또 어떻게 고쳐지게 되었는지 원인은 모르지만 - 아마도 기술자는 고장난 원인과 고쳐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 저는 만능 기술자이신 하나님의 자비의 손이 함께 하셨다고 믿습니다. 나아가 저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성도들의 사랑이 이런 모든 배후에 또 작용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남은 두 주 동안 제가 건강하게 잘 버티고, 또 열심히 해서 어려움 없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이 여러분과 온 가정 위에 더욱 크신 긍휼로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에서 최현범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