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회에 열심이다 보면 자칫 세상에 대해서 눈을 감는 신앙인이 되기 쉽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늘 교인이고, 교회생활이나 교회에서의 일 또는 내적인 경건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다보면 균형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세계의 다양한 실상들은 나와 관계없다고 여기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이러한 무관심은 또한 무책임을 낳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일들이 내 속에서 신앙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서 마치 섬처럼 고립된 모습으로 살아가다보면 나의 개인적인 열심과 경건이 도리어 내가 사는 사회 속에 좋은 덕으로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교회 내에서는 존경받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회 속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세상에 대하여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눈으로 그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를 적극적으로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세상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세상이 죄로 인하여 왜곡되어 있기에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면서 소망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왜곡된 모습을 바르게 잡아 하나님의 올바른 창조섭리로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을 읽고, 기도에 열심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모양이 반듯한 사람이 되는 것, 나의 인격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 받는 것이 훈련의 바라는 바이나 이 역시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제자훈련이 교회 부흥을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나 자신이나 교회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때, 우리는 또 다시 영적인 이기주의나 교회 이기주의의 함정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제자로 훈련받으려는 것은 믿음의 눈을 훈련하여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만 고착되어 있던 우리의 눈이 이제 우리의 이웃을 바라봅니다. 나아가 더 멀리 지구 저편의 사람들의 현실을 자신의 현실로 끌어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갖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우리 자신을 섬김의 도구로 드려야 하는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주께서 그 뜻을 위해서 쓰시겠다고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그릇으로 준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시작하려는 바 제자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은 궁극적으로 "내가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죽음으로 나의 이웃이 살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이 궁극적인 좌표가 우리 속에 분명히 서있을 때, 바로 거기서 우리는 정말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