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우리사회는 다양한 정책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당면한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 중에 대입문제는 난제중의 난제가 될 것입니다. 대입제도라는 것이 단순히 입학시험방식이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육 전체의 성격과 맞물려 있어서 더욱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대학시절 훗날 충북대학과 한림대 총장을 지낸 정범모교수로부터 교육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대입시가 매우 치열했던 당시 학부모와 학생들은 제도에 불만이 많았고, 문교부장관은 이런 불만의 표적이었습니다. 한번은 정교수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 사람들은 누군가 유능한 장관이 들어서면 좋은 제도를 내놓을 것 같이 생각하지만, 누가 그 자리에 들어서도 심지어 나 자신이 들어간다고 해도 획기적으로 나은 제도를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이 옳았고 지금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정부는 대학을 양산해서 고교졸업생 모두가 갈 수 있을 만큼 자리를 만들었지만, 국민의 불만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물론 더 좋은 제도를 찾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되겠지만, 보다 거시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대입시 문제는 제도의 문제 이전에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사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좌석은 하나인데, 열 명이 모두 거기 앉으려고 한다면 어떤 제도를 만들어도 아홉명은 불만을 갖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자녀교육에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자기 자녀로 입신양명케 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교육열이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아울러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을 만드는데 중요한 일조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교육 열기는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상실한 채, 모두가 같은 목표, 획일적인 꿈에 사로잡혀서 교육을 장려하다보니 소중한 교육의 장은 무서운 경쟁의 황무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청소년교육은, 바르게 판단하고 사고하는 길을 가르쳐주기보다는 대학이 요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대학은 그런 학생들을 사회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가치와 안목을 가진 재목들로 성장시키기보다는 회사가 요구하는 기능인을 만들어내는 학원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흑인 지성사회를 대표하는 듀보이가 한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라는 뼈있는 말은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조언입니다. 교육이 목수라는 기능인을 만들기에 급급한 사회는 결코 인간다움이 있는 좋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10명이 앉을 의자가 하나밖에 없을 때에 의자를 두세가 더 만들어주는 일도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더 많은 일자리와 경제성장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좋은 대학들도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의자에 꼭 앉아야만 행복하다고 하는 집착에서 벗어나, 서있는 자유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 - 그것이 우리 사회에는 정말 필요합니다. 좋은대학을 가지 않고도 또 좀 적게 버는 직장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에 우리 교육의 문제는 가닥을 잡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의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로 큰 것을 갖는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세상이 줄 수 없는 너무도 크고 영원한 것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바로 우리를 자유하게 만드는 비결을 갖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