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정치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비록 땅 덩어리가 넓지도 않고, 자원이 많지도 않지만,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 좋은 인적인 자원들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이 심하여 소모적인 분쟁이 계속되고 사회적인 안정을 얻지 못하면서 정치, 경제발전과 나아가 남북문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 노무현정권 때에 갈등의 골이 깊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그 갈등의 골은 치유되기 보다는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것은 노대통령이 좌파적인 코드를 갖고 정치를 했다면 이대통령은 우파적인 코드를 갖고 하면서 자신의 코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대통령 스스로가 중도강화론을 제창했습니다. 우도 좌도 아닌 중도의 길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극좌, 극우의 비난과 빈정거림에 직면하겠지만, 이것은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중도는 양쪽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가운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제 2의 비스마르크라고 불리우며 통일을 일구어낸 보수당의 헬무트 콜을 누르고, 1998년 수상이 된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집권하면서 ‘중도의 길’을 표방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같은 진보정당으로 집권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함께 99년에 ‘블레어-슈뢰더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중도개혁의 유럽 확산을 주도했습니다. 사회주의적인 정당이 이처럼 중도를 표방하는 가운데, 그해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도 파리대회에서 중도를 중심철학으로 하는 ‘파리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러한 ‘중도의 길’은 단순히 기회주의적이고 특징 없이 타협적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가 와해된 세계 속에서 오랜 이념의 틀을 벗어버리려고 하는 시대적인 요청이었습니다. 이러한 선언들이 특별히 좌파정권에서 나오는 것은, 보수정당보다도 진보적인 정당들이 오히려 이념을 너무 앞세우면서 변화되는 현실에서 유리되어졌다고 하는 자각에서 나오는 것이었니다. 비록 남과 북이 대치되어 냉전의 유산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반도이지만, 우리나라가 더 이상 시대에 뒤떨어진 이념대립에 매달리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국가 현실에서 이대통령이 ‘중도의 길’을 선언한 것은 바람직 한 것이며 나아가 이에 대한 실천적인 의지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정운찬교수를 국무총리로 기용한 것은 기대가 되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정총리후보에게 단순한 얼굴마담이나 꽃놀이패의 역할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며,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을 잘 조정해 나감으로 진보와 보수를 잘 아우르는 ‘중도의 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대통령 스스로 보수이념에 집착하거나 무리하게 언론을 장악하려고 하거나, 자기 성향의 사람으로 권력기반을 채우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사회 각계각층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과 잘 소통하는 통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줌으로 국민통합의 훌륭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탈이념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정치이념에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되고 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세상에서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봉할 이념은 결코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진리 앞에서 상대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념에서 자유로운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중도의 길’을 걸어가면서 대립과 분쟁에서 한발 물러나, 평화와 화합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의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이 사회의 부서진 신뢰의 담들이 다시 회복되고, 건강한 사회로 발전되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