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사회에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폭력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남극의 세종기지에서 주방장이 총무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 경악스러운 장면이 동영상을 통해서 퍼져나갔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한 배구 국가대표선수가 행동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코치에게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에 달하는 부상을 입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정과 학교, 스포츠, 직장 등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다시 각인시켰습니다.
폭력이 사회전반에 만연한 원인을 우리는 폭행사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종기지에서도 기지 대장은 이 사건을 쉬쉬하면서 덮기에 급급했고, 대원들은 폭력을 행사한 총무를 오히려 두둔하고 있었습니다. 얻어맞은 주방장은 평소 문제 있는 사람이었고, 때린 총무는 책임감이 강하고 맏형과 같은 사람이었으니 선처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폭행한 사람도 잘못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는 것이지요.
체육계의 폭력은 이미 일상화된 것이어서 충격이 크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선수들을 그렇게 강하게 다루지 않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냐며, 스포츠계의 폭력을 여론화하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메달을 따고 국위선양 한 것의 배후에는 이런 비인격적인 선수관리가 한 몫을 한 것이 아닌가하는 씁쓸한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우리 중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교의 운동팀에 폭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대부분 대학의 스포츠관련학과에도 비인간적인 얼차려와 폭력의 관행이 뿌리 깊이 박혀있습니다. 이것이 치유되지 못하는 것은 폭행이 우발적이고 감정적인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당연시하고 정당화하는 체육계 사람들의 사고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달이나 성적등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단체장들이나 정치인들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한체육회장이 체육계 폭력의 뿌리를 뽑겠다고 하면서 "맞아가며 따낸 금메달은 가치가 없다."고 한 말은 정말 옳은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GDP가 세계 14위, 올해 수출은 세계 9위이며, 내년 G20을 유치하는 등 한편으로는 아시아계의 변방에서 세계 중심의 영향력 있는 문명국으로 커가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과 같은 야만적인 관습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대변하는 하버드대학의 호미바바교수는 “문명이 전승되고 이식되듯 야만 역시 이곳에서 저곳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부단히 전파된다는 점”을 문제로 제시하면서 “문명에 내재하는 야만의 전파야말로 야만이 지닌 역동성의 원천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폭력이라는 야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강자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강자는 지배하는 것이고, 그 지배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며, 그 결과만 좋으면 모두가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 -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것입니까? 그 어떤 연유에서건,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건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강자의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한 야만은 치유되지 않고 우리 다음세대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폭력을 누구보다도 야만시하시는 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시 11:5]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강자는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자라고 가르치셨고 그분 스스로 힘이 있었지만, 우리를 위하여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희생의 자리에 서심으로 그 폭력의 불의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제자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비폭력의 삶을 실천하면서 가정이나, 직장이나 어느 곳에서건 폭력을 치유하기 위해서 노력하도록 합시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