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국무총리후보를 비롯해서 여러 신임 장관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습니다. 국무총리나 장관들 모두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의 최고 책임자요 핵심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식견 그리고 조직력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질 많은 권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국민의 공복으로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세이며 이를 위해서 높은 도덕적 자질이 요구됩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로서 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법을 지켜야하고, 권력의 자리에서 부정부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재물을 대하는 자세가 바라야 합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를 하면서 우리는 소위 높은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감추어진 윤리수준을 확인하게 됩니다. 위장전입은 상식적인 일처럼 되어버렸고, 부동산투기, 병역문제, 세금문제등 국민들이 범하는 크고 작은 범법과 부도덕한 행위들이 이들 속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힘 있고 능력 있는 그들이 일반국민들보다 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청문회를 통해서 이들이 일반국민들 속에 심어주는 것은, 나라의 법을 잘 준수하는 어리석은 바보가 되지 말라는 무언의 교훈입니다. 이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은 뒤 강조하게 될 공권력강화, 법질서확립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릴 지 의문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필요성을 정말로 절감하고 있습니다. ‘고귀하게 태어난 자는 고귀하게 행동하라’는 격언대로 과거 로마제국을 비롯해서 서양의 나라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높은 도덕율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통해서 나라의 기강을 세워갔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던 것이 바로 그런 정신의 산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엄격한 도덕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지켜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자리에만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 사회의 왕 같은 제사장 즉 영적 귀족이라는 성경 말씀을 따를 때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이 <철학과 현실>이라는 잡지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의 영향력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그에 따르면 2005년 인구조사에서 개신교 신자는 18.3%로 불교(22.8%)에 미치지 못했지만 개신교는 신앙심의 강도나 종교의례의 참여빈도에서 불교에 비해 훨씬 강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고, 신자들도 수도권과 고학력 엘리트, 젊은 세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개신교의 강한 영향력은 개신교를 믿건 안 믿건 상관없이 개신교적 사고방식이 폭넓게 모든 한국인의 무의식 속으로 침투해 가도록 했고 심지어 다른 종교로 하여금 개신교를 모방해가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개신교의 자기 성찰이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교회는 이제 우리 사회의 지도자의 자리에 서있습니다. 영향력이 큰 만큼 더 높은 도덕적인 의무가 요구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자주 세상의 비난에 직면하는 것은, 그만큼 빛과 소금으로서의 높은 도덕적 수준을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높은 도덕적인 윤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대명사였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높은 도덕적 의무를 요구할 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이것을 실천하여 이 사회가 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 건강한 사회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위해 노력합시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