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제목 : 다원화 사회의 종교갈등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원화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종교갈등의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얼마 전 불교계에서는 현정부의 종교편향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졌습니다. 정말 정부가 종교편향적인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대통령이 개신교인이다보니 그런 선입견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해바라기 같은 권력의 속성상 일부 공직자들이 대통령이 가진 종교에 우호적이면서 도를 넘는 행동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가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가톨릭 등이 주류가 되고 그 외의 크고 작은 수많은 종교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일본처럼 수많은 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 역시 범사에 종교성이 강한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종교들이 상호 평화를 이루는 것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반면에 종교분쟁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종교는 단순한 신념을 넘어서서 영원을 지향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됩니다. 유럽은 30년 전쟁등 수많은 종교분쟁으로 인하여 홍역을 톡톡히 치렀습니다. 가장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북아일랜드에서는 신교와 구교의 분쟁으로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아직도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종교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종교인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여러 종교 중의 하나로 상대화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신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사회 속에서 - 아직 완전한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 현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또한 스스로를 종교인으로 자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기독교라는 종교를 갖고 있는 종교인입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시각을 공유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하나의 종교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종교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거나 그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종교의 자유가 모든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어있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그들이 믿는 종교를 하나의 종교로, 그리고 그들을 하나의 종교인으로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갔을 때에 수많은 우상을 보고 마음에 분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우상들을 부숴뜨리는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혹간 그릇된 열정은 다른 종교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불상을 부수고, 신전을 훼손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장면을 연상하면서 이런 것을 하나님에 대한 열정의 표현으로 미화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기회와 권한이 주어지면 다른 종교를 법이나 권력으로 억압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먼 과거 단일종교사회에서 가능하던 일입니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든 종교가 사회적으로 동일한 권리를 누리도록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개신교인이거나 개신교가 다수라고 해서 더 많은 권리 내지는 특권을 기대하거나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권력의 도움을 받고 세상권력을 의지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과거 교회는 그러한 것들에 기대면서 타락했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만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왕이요, 유일한 구원자라고 하는 것을 진정 확신한다면, 우리는 좀 더 여유를 갖고 타종교를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이 사회를 평안과 안정 가운데 지키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