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안녕하세요. 오늘은 최근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승리하여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국경지역을 향해서 발사한 로켓탄을 이유로 이스라엘은 지난 12월 27일 대공습을 감행하였고, 1월 4일 대대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였습니다. 현재는 양쪽이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한 상태이지만, 이번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200명이 넘고 그것도 절반이 민간인들이며 부상자는 5천명이 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쪽의 사망자는 민간인 3명을 포함하여 13명에 그쳤습니다.

이 침공에서 이스라엘은 유엔학교와 건물, 병원, 언론시설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공습하여 그야말로 전쟁이 아닌 학살에 가까운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것을 수십년간 전례가 없었던 수준의 폭력이라고 규정하면서 가장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습니다. 하마스의 로켓포로부터 자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그야말로 빈대 한마리 잡으러 초가산간 태우는 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 출신으로 영국 노동당 중진의원인 제럴드 카우프먼은 “이스라엘 정부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유대인들의 죄의식을 팔레스타인 살육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의 가자침공은 나치의 유대인학살과 유사하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저는 10년 전 독일 뮨헨 근교 다카우에 있는 유대인기념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갑자기 붙잡혀 와서 생지옥과 같은 수용소생활을 하다가 무참하게 학살된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전시실에 는 유대인을 아주 흉악하게 생긴 나쁜 사람으로 그려놓고 사회를 위협하는 적으로 교육시키는 포스터, 삐라와 책자들, 이들을 생체실험에 사용했던 의사들의 연구 보고서 등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로 악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이스라엘을 방문하였을 때에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야드바셈기념관을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에는 홀로코스트의 더욱 생생하고 방대한 자료들이 진열되어서 그 참혹한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의 노력을 엿보게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보면 이들이 이 기념관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 또 다시 이런 비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국방력을 견고히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국을 지켜야한다는 교훈뿐 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스라엘은 유감스럽게도 홀로코스트에서 마땅히 배워야할 귀한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폭력이 얼마나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지, 인권을 짓밟고, 생명을 경시하는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지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땅에 오래 살다가 힘없어 변방으로 쫓겨난 팔레스탄 사람들을 향해서 이제는 나치처럼 힘과 폭력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2차대전 당시 폴란드에게 나치에 의해 할머니를 잃은 카우프먼은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이 대부분 전투원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바로 당시 나치의 주장이었다”며 “나치는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운 유대인들의 몸부림을 전투행위로 간주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처럼 폭력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것인가요. 내가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너의 불행은 상관없다는 나치의 사고가 그 피해자였던 이스라엘 속에 그대로 배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부 기독교인들 중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기독교 우파를 대표하는 팻 로버트슨 목사 같은 이는 이번 이스라엘의 침공 이후 한 방송국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강경 정책에 대한 세계 각국의 비난이 있겠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지지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 되심을 자처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니라, 힘없이 억울하게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모든 사람들 곁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고난당하는 자 곁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루 속히 그 땅에 평화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애청자 여러분, 다음 이 시간까지 평안하십시오.